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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퇴근길 전철에 비친 인생의 변화된 모습

피곤함에 찌든 직장인들의 퇴근길 !

오늘 전철을 타고 퇴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철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몸을 맡깁니다. 사람들이 마치 음료수 박스 안의 유리병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하루도 힘들게 일했을 그들은 집에 도착해야 비로소 휴식을 취할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배우자가, 아이가, 부모님이 그들을 반겨줄 것입니다. 쏟아지는 하품과 피곤 속에서도 그들은 하회탈 같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가족을 만날 것입니다.

하루종일 남편을 기다렸을 아내와는 대화를, 아이들과는 놀아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무감이 아닌 가족과의 재회에 대한 반가움의 또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 그들은 바로 우리의 곁에 있는 직장인, 월급쟁이, 셀러리맨들입니다.

퇴근길 전철 안의 모습


이제는 스마트폰에 완전히 밀려난 책과 신문 !

전철 안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전철 안에서 주로 신문과 책을 읽었습니다. 출근 길에 조그만 책 한권이나 집에 배달된 종이신문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전철 안에서 책이나 신문의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전철 안에서 보았던 풍경은 예전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전철에 타자마자 약속이나 한듯이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꺼내듭니다.

익숙한 솜씨로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뉴스도 검색하고 본방을 놓친 드라마도 봅니다. 연인과 카카오톡을 하면서 얼굴에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요즘 종이신문사가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 그들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도도한 변화의 물결 속에 미래에는 종이신문이 독자를 잃고 결국 언론으로서의 기능도 상실하게 될까요 ?


자신의 손해가 최소화 되어야 양보도 가능 !

예전에는 전철이나 버스에 어르신들이나 임산부, 아이들이 타면 자리를 양보하곤 했습니다. 오늘 전철 안에 엄마와 6살 정도 되는 아이가 탔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봐도 외면했습니다.

엄마와 아이는 자리에 앉지 못했고 중간에 내렸습니다. 이들이 내리고 난 다음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들립니다.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데 멀리 가니 어쩔 수 없어요!"

"그렇죠? 나도 괜시리 마음이 찔리는데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죠. 아직도 가려면 30분이상 가야 하는데 서 있을 것 생각하니 스트레스 받아요."

"한번 일어나면 다시 앉기 어렵잖아요. 아이가 내리더라도 다른 아줌마가 밀치고 들어오면 신경전 벌이기도 싫구요. 이제 그냥 저만 생각하며 살려구요."

대화를 들으면서 시대의 변화된 모습이 읽혀졌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인 양보를 미덕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양보도 자신의 피해가 최소화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쁘고 피곤한 현대 생활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화, 이기주의가 사회전반으로 퍼져나가 나중에는 "양보의 미덕"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이 기존의 한국적 정서와는 다른 방향인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이는 피곤함과 스트레스로 충만한 현대생활이 어쩔 수 없이 가져오는 변화일 것입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서로 함께 살아가며, 서로 돕는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저만의 소박한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